충청남도의 일반현황
위치
충청남도의 지리적 위치는
남단 : N 35 ˚ 58’ 30” (금산군 남일면 신동리)
북단 : N 37 ˚ 03’ 44” (당진시 석문면 난지도리)
동단 : E 127 ˚ 38’ 31” (금산군 부리면 방우리)
서단 : E 125 ˚ 32’ 21” (태안군 근흥면 가의도리)이다.
이러한 위치로 말미암아 충청남도는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기후상으로는 사계절이 뚜렷하고, 기온이 온화한 중위도 온대 계절풍 기후대에 속하고 있다. 한편, 충청남도는 남한의 중앙부에 속하므로 예로부터 영남과 호남으로 통하는 삼남의 관문으로 서울, 부산, 목포로 통하는 1번 국도, 경부 · 호남선의 철도, 경부 · 호남고속도로, 경부 · 호남고속철도와 서해안 고속도로 등이 통과하고 있는 우리나라 교통의 요충지이다. 그러므로 수도 서울까지는 1시간대, 부산이나 목포까지는 3시간대의 위치에 있다.
면적
충청남도의 총면적은 2019년 말 현재 8,245.5 ㎢로서 전국 총면적(100,401 ㎢)의 8.2%를 차지하며, 경상북도, 강원도, 전라남도, 경상남도, 경기도에 이어 6번째이다. 시군별 면적을 보면 공주시가 864.2㎢로 가장 넓고, 계룡시가 60.7 ㎢로 가장 작은 면적을 가지고 있다.
기후
충청남도의 연평균 기온은 12.9℃ 로서 대체로 온화하나 전체적으로는 대륙성 기후이며, 특히 겨울에는 북서풍을 막을만한 지형적 장애물이 적어 같은 위도상의 동해안보다 추우며, 서북부 해안지대는 적설량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지형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전국 어느 지역으로든 갈 수 있는 교통망을 갖추고 있으며, 차령산맥을 중심으로 한 동고서저의 지형지세로서 해발 100m 이하의 평야와 구릉지가 전체 면적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높은 산으로는 서대산(904m), 계룡산(845m), 대둔산(878m) 등이 있고, 큰 하천으로는 삽교천, 곡교천, 무한천 등이 있으며, 금강주변과 하천중심으로 평야가 잘 발달되어 있고 해안은 전형적인 리아스식 해안으로 발달되어 있고, 길이는 953㎞,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여 가로림만·천수만 등 만이 잘 발달되어 있다.
역사와 유래
충청남도는 한반도의 중앙부 서쪽에 위치하는 지역으로써 북쪽으로는 경기도, 동으로는 충청북도, 남으로는 전라북도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서쪽은 서해바다와 면한다. 또한 대전광역시를 둘러싸고 있다.
1964년에 발견된 공주시 장기면 석장리의 구석기 유적과 도내 전역에서 발견되고 있는 청동기 유적들이 증명하듯이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정착했던 땅이다. 또한 삼한시대에는 충청남도의 대부분이 마한의 북변지로서 당시 마한의 중심지이며 정치적 주도권을 쥐고있던 월지국이 지금의 천안시 직산면 일대로 추정되고, 마한의 54국중 15개 소국 정도가 충청남도지역에 분포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에 충청남도는 백제에 속한 지역으로 475년(문주왕 2년)에 백제의 수도를 한성(서울)에서 웅진(공주)으로 천도한 이래 660년 나당 연합군에 의해서 백제가 멸망할때까지 185년간 찬란했던 백제 문화의 꽃을 피운 지역이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웅진도독부와 소부리주(사비주), 웅천부, 웅주 등으로 불리워 졌으며, 후삼국시대에는 견훤이 세운 후백제의 영역에 속하게 된다.
고려시대에는 하남도, 양광도, 충청주도, 충청도 등으로 불리워 졌으며, 경기도와 합침과 분리가 반복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태조 4년(1396년)에 양광도를 충청도와 경기도로 분리하였고 선조 31년(1598년)에는 감영을 충주에서 공주로 이전하였으며, 이후에 충청도의 명칭은 공청도, 충청도, 공홍도, 충홍도, 공충도 등으로 수차례에 걸쳐 개칭되다가 순조 34년(1834년)에 공청도에서 충청도로 환원되었다. 고종 33년 1896년 칙령 제36호로 13도제로 개편됨에 따라 충청북도와 분리되어 비로소 충청남도가 탄생하게 되었다.
